어떤 목적을 위해 공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막연한 잠재 가능성에 대한 대비조차도 이미 목적인 건가?) 여태 대충 알고 사용해왔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한 번 공부해보고자 했던 생각은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사실, 학창시절엔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했지만, 단순히 전혀 잘 하지는 못 해도 그걸 할 때 몰입이 되고 아주 좋아했던 것들이 있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까지로 돌아가버린다면야 내 꿈은 이 나이쯤 다들 넘본다는 대통령에서 과학자를 거쳐 화가(그냥 나 혼자 예술 한다는 자체에 만족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주아주 유명한 거장이 되고자 했다)까지, 중학생 시절엔 문학에 빠져 어떻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나마 좀 현실적이 되어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지도 못 하면서도 막연히 ‘난 당연히 프로그래머가 될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도 말하고 다녀서 주변에서 지겨웠을 듯하다. 만약 그쪽으로 잘 생각해서 해나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지금도 영어가 부족하고 정말 못 하는 수준이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변함없이 좋아했던 수업 시간이 있다면 국어, 영어, 특히나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사주신 ‘시사 영어 회화(정확한 이름이 안 떠오른다)’ 때문에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4살 때부터 길거리에 다니면서 알파벳 놀이 파는 아저씨만 지나가면 그때마다 평소엔 뭐 사달라고 한 마디 한 적 없던 애가 ‘저거는 꼭 갖고싶은데…’라며 성격상 소극적으로 한 마디씩 했던 과거를 떠올려서 사주신 듯하다. 거기 테잎이 6개 들어있었는데 항상 컬러로 그려진 상황을 보면서 그 테잎에서 나오는 왠지 이국적인 분위기의 경쾌한 배경음악과 영어 발음에 중독되어 같은 부분을 여러번씩 듣다 보니 6개월 정도 지났을 때는 영어 표현 뿐 아니라 그 테잎의 물리적 스타트 포인트부터 엔드 포인트까지 돌아가면서 어느 시점에 정확히 무슨 소리가 난다는 자체가 외워졌다. 어떤 배경 음악이 어떤 시점에 나오면 ‘아, 이 다음엔 저 문장이 나온다’라는 식으로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초등학교에선 특정 아이의 부모님이 시간을 할애해서 일일 선생님으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 시간만 왠지 기대됐던 느낌이다.
중학생이 되자 회화 테잎 같은 것은 신선함이 안 느껴져 중학영어 테잎이 새로 생겼음에도 그걸 듣는 흥미를 잃었지만, 워낙 초등학교 때 좋아하게 돼서 어느 정도 그런 감정을 유지했나보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현재로 올수록 좀 강인한 면이 생겼지만(나의 자기 암시와 메이킹의 힘인 듯), 중학생 때까지는, 이제와 좀 굴욕이긴 하지만, 내 성격이 너무 얌전하고 소극적이다 보니 이제와 생각하면 특별히 괴롭힌 것도 아니지만 당시엔 나 스스로가 특정 반 친구에게 쩔쩔맸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애는 나보다도 키 작았고 그렇게 싸움을 잘 한다든지 힘 센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도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로 인해 주눅이 들어 타고난 나의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성격이 그렇듯 소극적으로 침체돼 버렸다고 들었는데 그게 내 어린 시절 성격에 큰 영향을 준 듯하다. 오히려 그렇게 어렸을 때 일찍 온순하고 소극적 성격을 가지게 되다 보니 자라면서 이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점차 나를 강화하는 정신적인 암시를 스스로 계속해 나가 이렇게까지 된 것 같다. 게다가 중3 때 당했던 교통사고 이후엔 내 성격에 또 다시 격변이 찾아왔다. 어찌됐든 그렇게 내가 쩔쩔맸던 아이는 영어를 정말로 싫어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숙제는 다 자기가 해와도 영어 만큼은 나보고 해달라고 강요했다. 나는 그 애가 때린 적 한 번 없는데도 그저 약간의 두려움과 또 영어 알파벳 적을 때의 손끝의 느낌이 좋다는 이유로 인해 그 애와 그 애랑 늘 붙어다니는 친구의 영어 숙제를 매번 떠맡게 됐다. 중1 때였으니까 대부분 숙제의 내용은 알파벳/단어 10번씩 적고 뜻 적어오기, 필기체로 10번씩 적어오기, 교과서 한 페이지를 노트에 베껴오기 등이었는데 다른 애들은 10회를 적을 때 나는 3개의 숙제를 해야 하니까 30회씩 적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에 그것이 힘들다거나 싫진 않았다. 그 이후로 중학생으로서의 내 영어 실력은 많이 향상됐고 필기체는 숙제를 하면서도 아예 모르는 애들도 있었는데 비해 난 아주 쉽게 쓸 수 있었다.
고1부터는 기존과 달리 나의 호기심과 관심사 영역이 대폭 넓어졌다. 모든 것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었고 그래서 오히려 꿈이 없었다. 뭐가 되고 싶냐고 다른 사람이 물었을 때, 너무 많은 것들이 되고 싶고 하고 싶다 보니 그것들이 오히려 꿈인지 아닌지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못 했던 것이다. 고2 때는 담임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의 영향으로 원래 좋아하던 영어에 불을 붙이게 됐다. 그전부터 뭔가 외국인과 관심사를 얘기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할 수 있던 최선은 펜팔이었다. 고1때 내가 시작했을 땐 펜팔을 하는 애들을 찾아보면 많이 있었지만 펜팔이라는 자체가 그리 잘 알려져 있진 않았기 때문에 펜팔이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처음 접하게 됐는지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항상 내가 시작해온 모든 것이 그렇듯 아주 우연히 접하게 됐던 것 같다. 어쩌면 특정 신문의 조그만 광고를 발견하고 용기내서 전화로 문의해봤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 중에도 펜팔을 하는 애들이 없어서 내가 첫 외국 친구의 편지를 받았을 땐 반 친구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 반엔 일어 펜팔을 하는 친구도 생겨나고, 우리 학교엔 해외 펜팔이라는 교류 방식이 많이 퍼지게 됐다. 그걸 함으로써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당연히 해나가야 하는 무엇으로 생각됐다. 그래야 내 생각을 전달하고 외국인 친구에게 창피 당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고3때는 몸이 너무 피곤했기에 다른 모든 과목의 공부를 포기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오로지 영어 사전만 가지고 외우고 영어 문제집 푸는 게 전부였다. 몸이 피곤하다가도 영어와 연관되면 그때만 잠시 안 피곤했다. 당시 우리 학교엔 ‘깜지’라는 게 있어서 연습장에 빽빽이 공부했다는 증거를 채워가야 하는 숙제가 존재했다. 난 영어만으로 매일 할당량의 두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야자 시간은 무조건 영어만 했고, 그러다가 몸이 피곤해지면 엎드려 잤다(이랬던 데에는 보이지 않는 사고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간 이유도 있다).
대입 후에는 다들 노는 분위기인 1학년 때 교내에 어학원이 있기에 아무 생각없이 새벽반을 끊었다. 비록 학교는 2시간 거리였지만 어쨌든 회화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별 고민없이 등록했는데, 그런 내 행동이… 다들 놀아야 하는 1학년생으로서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는 ‘쟤는 좀 괴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애’ 정도로 비쳤나보다. 나도 1학년 때 많이 놀았다. 공부 같은 건 우주에 맹세코 중학생때부터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열정을 가진 건 오로지 ‘교내 어학원 새벽반’ 이거 하나밖엔 없었다. 그 외에 전공이고 뭐고 공부한 적 없다.

20수년을 함께 해온 영어 서적들. 그러나 이 중에 완벽히 본 책은 드물다. 종합영어를 고1때 처음 학원에서 듣던 시점과, 그 후 고3때 혼자 필요성을 느껴 다시 대충 독학했던 시점과, 한참 후 강수정 선생님의 교재와 강의 들으며 왠지 부족하다 싶은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다시 종합영어를 들춰본 시점에서의 종합영어에 대한 나의 느낌은 각각 달랐다. 세 번째 봤을 때 비로소 종합영어의 높은 완성도를 처음 느꼈다. 그 전에는 슬렁슬렁 봐서인지 뇌가 덜 트였기 때문인지 의외로 내겐 종합영어 내용이 허술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사진에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이 일부 빠져있다. 어릴 때 보던 책은 이상하게도 한 번 이사할 때마다 한 묶음씩 없어지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야 이제 별로 볼 일 없다고 생각한 책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버리기도 했지만. 책은 많이 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무슨 분야의 책이든 단 한 권을 봐도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선택해 완벽히 꿰뚫은 후 하산하여 남에게 강의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엔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도 많이 읽는다고 상상력이 더 뛰어나지거나 문장력이 느는 건 아니다. 읽는 사람의 시점, 상황, 느낌, 핵심 쪼개기 정도에 따라, 단 한 권만 읽고 모든 걸 마스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50권을 읽어도 별로 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보면 위시리스트에 똑같은 종류나 똑같은 기술을 다룬 책을 십여권씩 넣어두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 비슷비슷한 대상에 대한 책이라면 그 중 단 한 권을 찾아 꿰뚫는 것만으로 마스터가 가능하다. 한 권으로 마스터가 안 되는 사람은 100권을 읽어도 마스터가 안 되게끔 상수 값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변수가 아님). 이 경우 자신의 기존 마인드와 방법론을 바꿔야 한다.

컴공과 전공선택 교재. 아직 자바스크립트를 학원 다니며 공부하기 전이라, 첫 컴공과 수업 때 이 책 표지를 보고는 ‘자바’의 더욱 고급화된 웹버전 언어가 ‘자바스크립트’ 겠거니 하고 큰 오해를 했다. ‘김석주의 자바스크립트’였나 잘 생각나지 않는데 학원 자바스크립트 교재는 그것이었고 당시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당시 학원 강사 분이 너무 핵심을 잘 찝어 가르치셔서 그랬던 듯하다. 스크립트류는 처음이던 내가 원래 알고 있는 얘길 듣듯이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예전의 오토캐드 강사가 그랬던 것처럼… 난 학교든 학원이든 선생님 복이 있다.

한때 아주 잠시 준비했던 7급 전산직 서적들. 내 일생 최악의 과목 한국사-_-. 고등학교때 국사, 세계사 과목이 제일 싫었고, 당시 학교나 사회적으로 이공계 선호가 전국적으로 에피데믹이던 ‘이공계 버블’ 분위기였는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명적인 국사 과목으로 인해 인문계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당시 학교에선 인문계 반 아이들과 이공계 반 아이들 간의 성적 차이도 컸다. 오늘날 이공계가 침체된 이유가 바로 당시의 이공계 버블이 피크를 찍고 붕괴됐기 때문이다. 역시 현재의 다수가 몰리는 길은 항상 지옥행임이 드러난다. 이공계가 죽어나가고 바닥 치는 시점에서 갈림길에 선 고등학생이라면 탁월한 선택은 당연히 이공계다. 항상 암흑과 죽음으로 보이는 외길을 택해야 산다. 몇 년 전부터 공무원도 팬데믹에 버블이 과열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그 업계의 위기는 확정적이다. 아무도 안 해서 내가 처음 개시하는 것이든, 아니면 한때 몰락의 길을 걸어 이제 모두의 관심에서 잊혀진지 오래인 것을 택해 손질한다면 최고가 되어 성공할 수 있다. 내 체질상 한국사 과목이 싫었던 이유는 스토리 전혀 없는 교과서 구성 때문인 듯하다. 무엇이든 줄줄 스토리가 있어서 듣고 이해해야만 하는 나로서는 쓸데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생뚱맞은 연도 같은 걸 외운다는 것은 뇌 구조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사도 싫어했지만 이원복씨의 6권짜리 만화 시리즈 ‘먼나라 이웃나라’는 정말로 재밌게 봤는데, 정규 과목 수업 내용 자체나 교과서 내용 자체도 그렇게 서프라이즈 같은 얘기 써놓지 말고 스토리가 드라마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역사도 옛날 얘기 하듯이 쭈욱 들려준다면 정말 재미있고 잘 했을 것 같은데 학교에선 그게 통 안 되니 타고난 나의 뇌 구조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그 역사적인 털보씨 책이다. 당시엔 신경쓰지 않아 몰랐는데 지금보니 털보씨 정말 책 두꺼웠네. 인쇄된 활자가 널찍널찍 시원하게 인쇄돼서 그런가. 98년 학원에서 C++을 배우기 전 96년도 휴학 당시에 집에 있는 시간엔 이 책으로 틈틈이 C를 독학했다. 어셈블리가 아니긴 해도 C로 새로운 개념의 운영체제나 또는 간단한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어야 겠다는 두 가지 절실한 목표가 있었다. 비록 각종 언어의 독학만 마치고 난 후에는 본질적인 목적 자체를 잊어버렸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