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1 때(95년도)는 리포트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게 트렌드로 막 자리 잡기 시작하려는 기미가 있었다. 95년 초까진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학교 전산실에서 누군가 짜다 말고 저장해두고 간 C언어 소스 파일이나 각종 ARJ 압축 파일 같은걸 열어서 내용을 뒤져보거나 윈도우 3.1을 띄워 그림판에서 처음 이것저것 그려보고는 너무 아름답고 놀라운 프로그램이라며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그림판과 함께 당시 출시됐던 도스용 워크래프트1이 전산실 컴에 깔려 있어 체험해 보고는 집에도 컴퓨터가 있어서 그림판, C언어, 윈도우 3.1, Mdir, 워크래프트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학기가 되어 드디어 컴퓨터를 구입했다. 같은 학번 친구 중에 C언어 책을 들고 다니며 공부하던 애가 있었다. 난 C언어에 대해 잘 몰랐지만 정말 좋아보였다. 게다가 중학생 시절 내 꿈이 뭐였든가? 바로 프로그래머 아니었든가. 나중에 그 친구는 컴공과로 전과를 했다. 나도 전과를 했다면 좋았으련만 당시 머리가 아직 트이지 않은 상황이라 준비할 수 있게 조금 더 일찍 생각지를 못 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니 후회하진 않는다. 복수전공을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나중에야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필시 경제학과/영문과/컴퓨터공학과 이 셋 중에 하나를 전공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컴퓨터공학과가 아닌 학과를 들어가게 된 주원인은 당시의 너무도 순진하고 우매하고 우유부단한 나의 성격 때문이다. 원래 세 군데 지망 학교 모두에 컴퓨터공학 또는 전자계산학과를 써서 원서 넣으려 했는데, 한 군데는 성적이 아슬아슬한 느낌이라 통계학과를 넣고(넣으면서 차라리 인문계 학과에 교차지원이 가능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머지 두 군데는 각각 전자계산과 컴공을 넣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결국 나중에 입학한 학교에 당도했을 때 컴공과 선배들과의 면담도 한 번 해보지 못 한 채, 첨부터 우리 학과 선배들과 마주쳐버려 홍보 공세와 설득 그리고 내 성적에 대한 불안감 조장으로 인해 당시 인생을 전혀 모르고 순진무구했던 내가 드디어 결심을 까맣게 잊은 채 잘못된 선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나중에 결국 타 학교 전자계산학과, 통계학과를 추가로 합격했고 입학한 학교의 컴퓨터공학과도 충분히 합격 가능했음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밝진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결국엔 다 내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을. 공대생이면서도 항상 주위로부터 문과생이 확실해 보인다는 오해를 샀다. 심지어 사주, 관상, 이미지, 적성, 주변 사람들의 평가 이 모든 요소에 있어서 내겐 인문계가 적합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스스로 돌이켜 봐도 뭔가를 깊이 연구하거나 파고들어 남들이 알아내기 힘든 교묘하고 신기한 열매 속 씨 부분을 발견하는 것에 매우 흥미가 있다.
그래도 학교를 다니는 순간은 그럭저럭 즐거웠던 듯하다. 2학년 초, 수업을 듣다가 과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뭔가에 대해 뇌리에 스치면서 계시가 왔다. “~휴학해라~”. 짧은 순간이었지만 너무도 뚜렷하고 선명한 두뇌 속의 계시였다. 따사로운 4월의 어느 날 군대를 가는 것도 아닌 녀석이 휴학계를 제출하고 1년간 휴학하면서 여러 모임 활동을 했고 정말 많은 카테고리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당시엔 어느 모임엘 가도 내가 거의 최연소자였기에 사람들과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휴학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캐드 학원을 다니며 오토캐드 과정을 수료했다. 당시엔 인테리어나 공간 디자인 같은 일이 멋있는 직업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실상 그보다는 캐드 자체의 매력과 손맛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캐드 자체가 재미있었고 설계, 구상, 디자인 이라는 개념들에 매우 끌렸기 때문에 아무런 미래 목적 없이도 단지 좋아서 그걸 계속 할 수 있었다. 휴학 당시엔 캐드뿐 아니라 컴퓨터음악도 공부하게 됐다.
휴학 기간 중에는 몇몇 모임에서 적극 활동하여 임원을 맡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제출해서 장려상을 타기도 했다. 배우러 다니는 시간과 모임에 참석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틈틈이 워드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엔 보통 한글문서 1페이지 당 워드 입력 단가가 2,500~3,000원 정도였고, 요즘과 달라 컴퓨터를 잘 못 다루는 사람도 많았으므로, 타이핑 속도가 800타 이상이기만 하면 원활한 워드 알바 수주가 가능했다. 심지어 한 번은 모 직업소개소 사장님께서 워드 작업 의뢰를 하셨는데 그 분은 이후에도 꾸준히 내게 일감을 맡기셨다. 기본 단가라는 게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도 그 분은 내가 어린데다가 뭔가 하려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려고 하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한글 1페이지 당 10,000원씩을 지급하셨다. 나는 양심상, 불편한 심기상 도저히 받을 수 없어 거절했지만 그 분은 막무가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서 번역 단가 최저 마지노선이 한글 문서 영한 번역 1페이지 당 15,000~20,0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의 그 단순한 워드 알바보다도 대우가 못 한 것 같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책 번역은 단가가 아예 그보다도 훨씬 낮지만…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어렸기 때문인지 주변에 여러 분야에서 날 도와주려 하신 분들이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 분들께 예나 지금이나 진심으로 감사한 생각이다) 나의 PC통신에서의 각종 모임 활동으로 인해 내 아이디와 연락처가 어떤 경로로 알려졌는지, 몇 차례는 컴퓨터 학원으로부터 강사로 일할 생각이 없냐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사회 경험과 대중 앞에서의 말하기 경험 등을 위해 매우 좋을 것으로 판단했으나 집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당시엔 교통편도 불편하고 여러 가지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배우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 좋은 의뢰가 들어온 기회들을 빤히 바라만 보고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아서는 아무리 멀고 시간이 없었어도 어떻게든 했어야 했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엔 너무 내 사고방식 자체가 소극적이고 잘못 돼 있었던 듯하다.
4학년 때는 어차피 교양도 별로 내게는 쓸모 있는 과목이 없는 것 같아서 나의 이상향이자 로망이던 컴공과의 전공을 몇 개라도 이수하기로 했다. 그건 어차피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이지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더구나 좋아하지 않는 일은 남들에 비해 더욱 더 할 수가 없는 나의 유전인자와 두뇌 구조 때문에, 나와 너무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과목들을 전공하면서는 학점도 좋지 않았기에 굳이 불필요하게 생각되는 교양 과목을 듣고 구차하게 학점 올릴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교양 과목 대신에 C 알고리즘, 자바, MFC 등 4과목 정도를 컴공과 전공선택으로 들었다. 놀랍게도 당시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오후엔 강남에 있는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 했으나 필수적으로 생각된 자바스크립트와 기본 C++ 과정을 수료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미래의 직업 같은 목표로 생각지도 않은 채 그냥 무작정 하고 싶어서 했다. 대학 다니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바로 ‘도스+윈도우3.1′ 같은 ‘운영체제’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빌게이츠의 MS-DOS 6.2는 이제 가볍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주고 분홍토끼OS 1.0의 시대가 막을 올려야 할 시점이라고 우습게도 당시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냥 꿈이 그랬다는 것이지 사실상 절대로 나의 당시 프로그래밍적 지식적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허구나 이상과도 같았다. 불가능해 보이든 말든 나는 운영체제를 제작하는 것이 당시의 가장 큰 바람이자 희망이었다. 근본적인 지식이나 핵심도 모른 채 공룡이 그려진 양장본의 운영체제 원서를 사놓고 보려는 결심을 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거의 보지 못 했고 어셈블리도 아닌 기존에 배운 C언어를 가지고 도스 상의 윈도우 3.1을 흉내 낸 그래픽 인터페이스만 뜨는 그런 것을 만들다가 중도 포기한 기억이 있다. 당시 하이텔 소프트웨어 동호회인지 운영체제 동호회인지에 K-OS라는 운영체제 (디스켓으로 부팅되고 명령어 하나 없이 단순히 프롬프트만 뜨는 수준)를 만든 분이 있었는데 내가 발견했을 당시 군대를 간걸로 돼 있었다. 그 운영체제를 디스켓에 카피해서 부팅해 보고는 얼마나 가슴 떨면서 존경스럽게 생각했던지… (이 분의 실명도 알았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백업해둔 1990년대 문서 어딘가에 들어있을 텐데… 김XX 였는데^^ 외자였나?=_=)
나는 졸업 후에야 군대를 갔고 제대 후 2004년도 초엔가 나의 첫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당시엔 웹 페이지에 대한 아무런 시각적 기능적 안목도 없었고, 이것저것 기존에 배워놓은 낡고 먼지 앉은 자바스크립트와 제대 후 모 사이트에를 통해 독학한 html 작성법을 가지고 이래저래 볶아 매우 독특한(?) 홈페이지를 완성했다. 그 후 사이트를 십여 차례 리뉴얼 하는 과정에서 php, smarty 템플릿, css 등을 익히게 됐다. 긴 경험 끝에 얻은 결론은, 결국 사이트는 가장 심플한 것이 가장 오래 가며 무난하고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누구나 초기의 심리가 그렇듯 홈페이지에서의 우클릭 방지나 드래그 방지에 대단히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시간이 흐르며 정말 쓸데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더구나 오히려 접근성에 상당히 방해가 되니 말이다. 내가 방문자로 입장이 전환되어 타 사이트를 볼 때 스크립트 방지 처리 돼 있으면 그 사이트는 아예 안 보고 나온다. 왜냐하면 만일 좋은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드래그가 안 되어 나중에 자세히 읽어보기 위해 복사하기에도 수고가 따른다(무단 퍼가기를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야 이해하지만 다른 순수 목적을 가진 사람들까지 불편을 겪고 결국 무단 퍼가기를 원하는 사람만 귀찮음을 무릅쓰고라도 끝까지 퍼가게 마련이기 때문에 일거양실이다). 게다가 그런 사이트 치고 정말로 독자적이거나 유용한 자료들로 채워진 경우는 보지 못 했다. 사실 추가기능 하나만 설치하면 그런 스크립트를 모두 제거한 채 페이지의 모든 내용물을 다 가져갈 수가 있다. 제 아무리 nhn의 복잡한 네이버 블로그/카페의 게시물이라도 긁어가려고 맘만 먹으면 한 순간이다. 컴퓨터 안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은 가져가거나 녹음할 수 있다. 이것은 기술이 해리포터의 마법 수준으로 진화하고 명왕성까지 1일 왕복권이 되며 암 덩어리는 손으로 개인이 집에서 쉽게 들어낼 수 있는 기술의 시대가 된다 하더라도 결단코 막지 못 한다는 진리는 이미 명백하며 영원하다. 기술을 기술로는 못 막고 다수인의 의식 전환 소용돌이를 대거 불러일으켜야 한다. 본인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라면 클릭 1회 정도쯤 귀찮지 않게 마련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현재의 워드프레스라는 CMS 플랫폼으로 옮겨 오기까지 다양한 플랫폼과 페이지 방식을 작성해 보면서 사소하나마 각종 지식과 정보를 쌓을 수 있었다. 원래 학창시절 운영체제 다음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있다면 2위가 RPG 게임이었고 3위가 CMS(당시로서는 그저 게시판 위주의 플랫폼 정도의 개념)였다. 역시 그 당시 제로보드는 너무나 존경스러운 bbs 툴이었고, 내가 처음부터 직접 개발하고 접근하기엔 이미 완성도나 복잡도가 너무나 높아져 있던 상태의 툴이다 보니 그저 존경스럽고 대단해보일 뿐 어떤 내가 제작자로서 시작하기 위해 참고하기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모델이었다.
제대 후 3년 정도 문서/논문 같은 것을 개인적으로나 번역 에이전시를 통해 수주 받아서 작업하고, 동시에 다음 편에서 얘기하겠지만 배워놓은 컴퓨터음악을 활용해 일본 음악 가라오케 곡들을 카피하는 작업을 한 몇 년 병행했다. 그 중간에 누구나 따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조차 없어보이게 전락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건 어디 가서 땄다고 내밀 수도 없을 만큼 유용하지도 않고 경쟁력도 없는 자격증인 것 같다. 자격증 하나 더 따기 보다는 차라리 응용력과 실질적인 적용 능력을 키우는 게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