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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Feb

웅큼이 한 살 반

2010 at 10:25 am by 아쿠아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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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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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큼이가 2008년 7월 말에서 8월 말 사이 태어난지 2주 정도 됐을 때 우리 집에 왔으니까, 현재 벌써 대략 1년 반을 산 셈이다. 시간은 공포스럽게 빠르다. 롯데월드의 어느 놀이기구보다도 현기증 나게 빠르고 심장 떨리게 빠르다. 간혹 시간의 빠르기 때문에 한 순간 놀라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햄스터의 수명은 2년에서 길면 3년 정도라고 하니 웅큼이와 함께 할 시간도 그리 길게 남진 않았다. 그 절반의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간 걸 돌아보면 앞으로의 절반도 매우 짧게 느껴질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사람으로 치면 현재 약 40세 정도) 웅큼이를 손에 올렸을 때 느낌이 다르다. 예전에는 말랐어도 튼튼한 골격이 느껴졌는데 한 두달 전부터는 좀더 가볍고 전체적으로 물렁해진 느낌이 난다. 나이 든 사람을 만질 때와 약간은 비슷한 느낌이랄까. 신체적으로도 약해졌지만 정신적으로도 약해졌나보다. 원래 웅큼이는 어려서부터 비교적 겁이 좀 많고 용기도 적은 편이었지만, 나이가 들자 더해졌다. 심지어 자기 아들들과 마주치면 으르렁거리고 자기가 먼저 달려들었었는데, 요즘엔 가끔 만나면 슬슬 피하거나 기죽어서 몸을 떨 때도 있다. 그런 약한 모습을 보여서인지, 수컷 중 가장 순하고 얌전했던 염둥이가(물론 사람에겐 여전히 얌전하다) 웅큼이를 만나면 먼저 왈칵 달려들곤 한다. 염둥이는 어렸을 때에 비해 점점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 같다. 웅큼이 뿐 아니라 다른 수컷 형제들을 만나도 먼저 달려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심하게 으르렁댄다. 한 번은 염둥이가 그랬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염둥이와 짜리양을 웅큼이와 아주 잠깐 접촉시키게 됐을 때 바로는 못 봤는데, 조금 시간 지나서 보니 웅큼이 뒷발이 물려 피가 나고 있었다. 범인은 둘 중 하난데 짜리’양’ 보다는 웬지 염둥’군’의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항상 내가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웅큼이의 식성으로 볼 때 웅큼이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먹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한 달이라도 수명을 늘리기 위해 철저히 먹고싶다는 것을 제한해야 할 것인가의 선택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웅큼이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철저히 금지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사실상 그게 바람직하고 진리이며 당위적인 선택이기도 하고. 진리임을 알아도 고민된다. 진리는 항상 옳지만, 항상 선택받지는 못 한다.

일단 정이 들대로 든 웅큼이나 도리양의 남은 여생의 짧음도 고민이지만, 더 큰 문제는 막상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문제다. 화장을 맡기면 유골을 회수할 수 없어서 싫다. 동물병원에 주면 분명히 종량제 봉투 혹은 알 수 없는 곳에 던져 버릴 것이 뻔하다(아닌 곳도 극소수 있겠지만 극소수는 이 경우 거론의 필요가 없다. 다수의 곳에서 잘 처리해준다고 하더라도 내 눈으로 투명하게 과정을 확인할 수 없음 자체를 용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개 어린 애들은 아파트 화단에 묻어준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 후에도 여기 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며 이 부지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거나 개발될지 모르는 일이다(그래도 그나마 이 방법이 대다수에겐 별 수 없는 대안이겠지만). 아니면 6개월 내에 개인 용도로 임야나 전을 구입해서 거기에 묻어주는 일이다. 그런데 이건 현실성이 없다. 이런 목적의 땅을 살 경우 충분히 알아보고 영원히 팔지 않게 될 완벽한 땅을 구입해야 하는데다가 큰 면적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적정한 부지 선정도 어렵고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결국 겨우 6개월만에는 힘들다).

재작년 말일에 죽은 만두양도 제일 추운 날에 죽어 뒷산의 땅이 얼어서 제대로 묻지도 못 한 채 버리고 온 느낌이 가끔씩 다시 들곤 한다. 햄스터를 미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햄스터 그대로로 상상하면 이해 못 할 것이기에, 이 상황을 자신의 어린 아기가 죽었을 때 그 아기를 종량제 봉투에 싸서 버려야 하느냐 아파트 화단에 대충 묻어야 하느냐의 문제와 동등한 레벨에서 생각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평소 얼마나 친밀감을 주는지. 아마 햄스터를 기르는 사람이라도 많은 시간 방목하고 접촉하지 않는 이들은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부엌에 있을 땐 졸래졸래 와서는 일어서서 음식 달라고 두 손을 벌리는 모습은 사람의 어릴적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햄스터는 지능이 인간과 달라 나이가 들어도 인류의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게 되진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을 닫아 두면 문 밖에서 열어달라고 두드리고 문을 긁는다. 미닫이 문도 당겨서 여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당겨보지만 힘이 약해서 열리지 않는다. 이때 열어주면 매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방법이 틀린건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내가 여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특정 동물들에 대한 선입견이 너무 잘못된 것 같다. 물론 그 동물이 병원체를 옮길 경우엔 일부분에 한해 이해 가지만…

고3 수능이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난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맨 처음에 들어가서 치킨 옷을 입혔는데 그때 반지하랄까 콘 통조림을 저장해두는 창고가 있었고 바닥에서 치킨옷을 입힐 때 그 입구가 보였다. 한 번은 그 입구 앞에서 치킨 옷을 입히는데 검은 쥐 2마리가 친구처럼 나란히 앉더니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는 것이다. 눈이 마주쳤는데 그전까지 내가 생각해온 징그럽고 끔찍한 쥐의 얼굴이 아니라 생각보다 상당히 귀여웠고 천진한 표정으로 닭일지 양상추일지를 먹고 싶어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역사적으로 햄스터뿐 아니라 모든 설치류의 일생은 참 애처롭다. 혐오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비록 병원균을 옮기는 들쥐나 집쥐라도, 그들이 사람 살지 않는 다른 곳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게끔 배려해 주는 것이다. 인간은 체구가 몇백배 크니까 마음도 최소한 그 정도는 넓어야 한다. 그들은 공룡기 등 거대 육식동물이 판치던 시절에 햇빛을 좋아했지마 어쩔 수 없이 어둡고 작은 굴에 숨어살며 낮에는 나오지도 못 했다. 그 결과 눈이 퇴화된 것이고 어두운 곳을 잘 보게 되었다. 음지에 사니 태양의 혜택(태양의 신체나 건강 면에서의 혜택은 위대하다. 옛날 인류의 저지능 시절에 왜 ‘태양신’ 장편소설이 작성되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쭉 섬기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을 별로 받지 못 하고 몸집도 작아지고 힘도 약하니 자주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자주 구하러 나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한 번 구하러 나가기엔 생명의 위협이 많기에 음식을 한 번에 많이 모아오는 성격도 생기고, 거대 육식/초식 동물들이 발견하지 못 하고 흘린 조그마한 곡식 낱알 정도를 밤새 힘들게 모아와서 굴에 저장해 두고 틈틈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다니는 속도가 빨라야 했다. 발빠지게 달리다 보니 세대를 거치며 속도가 점점 빨라진 것이다. 가뜩이나 이들이 먹을 게 없는 세상에서 바퀴벌레도 좋은 틈새 고깃감이니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그만큼이나 빨라야 했던 거다. 절실함은 가능성을 낳는다고, 공룡이나 새의 알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앞발을 단순히 발로만 사용해선 안 되고 단순하나마 손의 기능으로 사용해야 했다. 큰 동물이 잠든 밤에 작은 알은 두 손으로 들어 날라야 했고 큰 알은 두 손으로 굴까지 밀어와야 했다.

인류는 생각보다 의타심이 강력해서 항상 남에게 의지하고, 자신이 약한 동물에게 인자하고 맘 넓은 ‘신’이 되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기보다 더 강한 ‘신’에 의지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신이되어 누군가 동물을 돌봐주지 않는다면, 자신을 돌봐줄 신 또한 존재할 리 없다고 보는 것이 진리다. 우주는 항상 사이클이며, 오면 가고 가면 오는 것이지, 절대로 한쪽으로 이유없이 흐르고 끝나는 경우는 없다. 모든 것에는 조건과 반작용이 있으며 그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로 인한 착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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