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caret 문자(`)를 ‘캐럿‘으로 잘못 표기한다. 캐럿이 아니라 캐릿이다. 덕분에 기존 시중의 서적들과 학원 강의 내용으로 공부했던 나도 과거엔 이것을 캐럿으로만 알고 있었다. 예전에 앰퍼샌드(&)역시 어느 컴퓨터학원에서 ‘앤퍼센트‘라고 가르쳐서 물의가 빚어졌던 기억이 난다.
정규식에 등장하는 용어 lazy quantifier를 기존 몇몇 서적에서 게으른/느슨한 수량자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이 비록 의미상으로는 크게 잘못됐다 말할 수 없으나 충분히 한자/한글 끼리의 통일이 가능한 경우인데 굳이 greedy quantifier는 탐욕 수량자, 그리고 또다른 용어를 소유 수량자로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lazy quantifier만 한글로 그것도 서술형태로 ‘게으른’ 수량자라는 식으로 기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느슨한 수량자는 의미가 조금 동떨어지기까지 한다(넓게 보면 틀렸달 순 없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사고방식으로 지나치게 욕심없어 자기 것도 못 챙기는’ 이라는 의미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헐겁거나, 풀어져 있거나, 자유를 준다는’의미 쪽에 가깝다).
그래서 수량자 시리즈를 간결한 한자어로 통일성을 고려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possessive quantifier: 소유 수량자
greedy quantifier: 탐욕 수량자
lazy quantifier: 나태 수량자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당장 의미만 전달되면 그만이지 뭐‘라는 매우 그릇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으나, 이것이 누적되고 이후 점점 복잡한 이론이나 버전업 된 신개념에 접목되게 될 경우, 그 순간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용어의 늪에 빠지게 된다. Y2K를 대비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던 컴퓨터의 두자릿수 연도 체계같이… 기왕이면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장기적 관점에서 좋다. 마치 특정 카테고리의 폴더나 디렉터리 정리할 때 일관성 없이 어떤 폴더명은 이랬다가 저 폴더는 저랬다가 해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본인조차 알아보거나 찾기 힘들게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영 불가능할 경우라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충분히 가능한 경우는 수십 번 생각을 거듭해서라도 같은 레벨의 용어들은 통일되고 일관적인 방식으로 전부 통일시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용어 신조다.
기존에 굳어져서 이해하기 쉬운 표현 중에서도 어느 정도 선의 것들은 고집하는 것이 이해되거나 용인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잘못 돼 있는 경우에는 단지 오래 그렇게 사용해 왔다는 점과 새로운 용어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점만으로 계속 그 잘못을 다음 세기까지 이어지도록 수정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용어는 기존에 너무도 잘못 굳어져 있어서 정확한 의미를 내가 새로 찾고 검토하는 데만 시간이 너무 걸려버리는 일이 흔하다.
— 추가로, 기술 번역 용어 선택에 있어서 내 평소 견해 중 일부를 밝힌다. —
기술서나 기술문서(IT든 광범위한 공학이든)라 하더라도 이것은 실무 개발자와 단순 번역자의 차이인 것이 아니라, 용어 마인드와 번역 경험(번역 실력이 아니라 왜 그렇게 사용하면 앞으로는 안 되는지를 경험해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번역자들 중 정말 기존의 용어나 표현을 잘 몰라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예전 어느 글에선가 말했듯 레벨1의 사람과 레벨3의 사람이 똑같은 장비나 도구를 선택해서 똑같이 사용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 둘의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레벨 3은 레벨1 시절에 현재 쓰는 도구를 사용하다가 레벨2에 이르러 깨닫고 후회하면서 다른 도구를 사용했으나, 레벨3에 이르러 레벨2때 깨닫지 못 했던 사실을 경험에 의해 알아차리고 다시 레벨1로 돌아가되 그때는 몰랐던 방법을 동원해서 그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레벨1 시절과 레벨3 시절에 똑같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결코 능력치나 경험치나 의도에 있어 동일하다거나 발전 없이 회귀해 버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용어를 모두 이해하고 있으면서 그것들의 문제를 파악했기 때문에 절대로 그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되는 용어 그대로를 사용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케이스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결코 그것의 존재를 몰라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는 왜 그걸 택했는지 이해 되는데 가슴으론 정녕 받아들일 수 없다고나 할까. 실은 이것의 거꾸로인 것 같다. 이 얘기를 하게 된 이유는 나의 기존 경험에서 일부 개발자들이 실무 개발 경력 없다는 이유만으로 번역자의 선정 용어 자체를 굉장히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내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해오던 차였다. 실무 개발까지는 아니어도 난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 언어를 두루 다룰 줄 알고, 학교와 학원을 통해 여러 과정들을 이수했고 막연히가 아닌 관심을 갖고 공부했기에 여느 개발자 못지 않은 식견이나 지식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연히 실무적인 개발로 결과물을 생성해 내는 데에 있에선 애초에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참에 아무래도 약간이라도 개발을 시작해야 할까나?)
그렇다고 내가 생각해낸 용어가 항상 전부 옳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부족하고 계속적으로 배워나가는 진행형의 인간이기에 다른 더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거나 틀렸다고 생각하던 기존 것에 대한 정당한 반증이 제기된다면 충분히 검토해서 일리가 있다면 다시 그것으로 손쉽게 전환하는 유동적인 용어 마인드를 지녔다. 다만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한 가지는, 실력이 아니라 적어도 나는 용어 하나를 선택함에 있어서 모든 기존 용어들을 꿰뚫은 후 모두 마땅치 않다면 새 후보들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 모집해서 그 중 수차례에 걸친 확인과 넓은 분야와 한 분야 내에서도 세분되는 상황이나 경우를 모두 고려해서 일관적이고 가장 대표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을 택일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나는 비록 내가 틀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더라도 대개의 경우에 대해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공학 분야에서는 특히나 대학 교수님들의 용어나 표현에 대한 입김이 거세다고 들었다. 거의 권력 다툼 형식으로, 누가 더 위상이 있나를 대결이라도 하듯이 서로 자기가 만들어낸 용어로 채택하게끔 정부나 특정 기관에 입김을 넣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바람직한 용어 생성에 도움이 될지는 모두들 알 것이다.
한 예로, ‘쓰레기 수집’이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못마땅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용어가 그렇듯이 이것 역시 그닥 의미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존에 워낙 이 표현이 굳어버려서인지 다른 표현을 썼다가 손가락질 받은 적도 있다. 그 시점에서야 웃고 넘길 수밖엔 없었지만 맘 속으로는 씁쓸함과 업계의 암울하고 폐쇄적인 현실에 대해 절감했다. garbage collection은 말그대로 ‘이제 더이상 참조되지 메모리 부분(찌꺼기)을 해제함으로써 다른 곳이 사용할 수 있게 비우는(얹어 놓았던 것을 거둬 들이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쓰레기(쓰레기도 완전 틀린 건 아니다,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같으니까)라고 표현했다. 쓰레기보다는 이 상황에 더욱 적절한 ‘찌꺼기’란 표현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수집’이라니, 취미로 우표 수집하시게요?? 수집은 의미상 정녕 부당하다. 수집은 꼭 필요해서 ‘나의 프라모델 컬렉션’처럼 소중히 모아놓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 번 회수한 메모리 상의 참조 찌꺼기를 수집해 놓았다가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있나? 말 그대로 ‘폐 배터리 회수‘의 느낌인 거다. 못 쓰는 것이 됐으니 이제 완전히 회수해서 버리든지 처리하는 느낌인 것이다. 그래서 지당하게시리 garbage collection을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표현 또는 정답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표현은 ‘찌꺼기 회수‘인 것이다. 이에 대해 내가 위에 쓴 것처럼 정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비웃는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태도는 보이지 말았으면 한다. 항상 세상에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더 많은 시간과 성의를 들여서 더 많고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끝으로, 무엇보다 어떤 번역자의 오류나 오역 등이 있어 보일 땐 역자도 모르게 뒤에서 수근대지 말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역자 본인에게 직접 그 견해를 전달해 주었으면 한다. 뒤에서 얘기하는 것은 그저 비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발전도 없고 번역자도 그 실수를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일부 번역 카페나 번역 모임에서 일부 번역가들이 그 자리에 없는 타 번역가의 번역물에 이러쿵 저러쿵 하며 오역을 지적하면서 마치 그러는 자신들의 행위를 ‘이 업계의 오역을 지적함으로써 더욱 발전돼 가기 위해’라는 고상한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행위를 몹시 싫어하는 것이다. 무엇이 발전된다는 것인가?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의 확연히 보이는 실수나 발견하고 고치는 데 주력하는 게 정녕 발전적일 것이다.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취해 조언해줄 수 있는 배려와 마음씨에서 사회 전반의 발전이 흘러나오게 된다. 뒤에서 비방하고 궁시렁대봐야 아무런 나아지는 것이란 없다. 만약 내가 그런 식으로 내 번역물에 대해 타 번역가들로부터 터 나 모르게 ’비방’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아주 기분이 나쁠 것이다. 아직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