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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Mar

나의 공부 일대기 3편 – 유년기와 음악

2010 at 07:33 pm by 아쿠아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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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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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나의 유년기의 몇 가지 배경과 나에게 음악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적어본다. 생일이 빨라 초등학교를 7살에 들어간 나는 한 살 형과 누나뻘인 초등학교 동기들이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선희, 이문세 등 유행가 가사를 줄줄 따라 부르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난 그런 가요를 따로 접해 보지도 않았고 그런 대중가요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아이들이 흥얼거리던 노래 중 일부는 멜로디가 내 맘 속에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나랑은 상관없다는 생각에 가요를 접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유년기 때의 난 지금 돌아보면 신기할 만큼 소극적인 성격으로 심지어 라디오나 TV도 부모님이 틀어 놓았을 때나 보는 정도였기에 심지어 집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에도 내 손으로 TV나 라디오를 직접 켠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으며 아예 생각지도 못 했다. 가끔은 만화도 보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허가하는 몇 가지 프로그램에 한하여 시청이 가능했다. 그렇듯 나와 미디어(음악 포함)는 서로 매우 동떨어져 존재하는 관계였다.

multiplication table그래서 음악은 듣는 것에도 관심 없었지만, 특히 노래 부르기나 악기 연주는 매우 싫어했다. 우리 집이 당시에 큰 식당을 했는데, 아버지의 조기교육(?) 성화로 인해 난 4살 때 그 식당 2층에 있는 접대실에 갇혀서 중학생 음악 교과서의 음표를 그대로 음악 노트에 옮겨 그려야 했다. 구구단을 외다가 하나 틀리거나 음표를 하나 잘못 그릴 때마다 한 대씩 회초리 맞았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교육적 강요로 인해 내가 하고 싶거나 놀고 싶은 것에 있어 매우 제한받다 보니, 선천적으로 타고났던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 모두 숨죽기에 이른다. 본래 4살 이전까지의 내 타고난 성격은 길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아저씨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화하는 수준이었고 낯가림이 전혀 없이 적극적이었다. 어렸을 때는 동물에 호기심이 많았고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언제나 과학자와 화가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당시 처음 보고선 가장 갖고 싶던 전자계산기, 모형 비행기, 알파벳 놀이판은 끝내 얻지 못 했고 내가 싫어하는 것들만을 강요받았다. 다른 애들은 초코우유, 딸기우유를 마음껏 먹을 때 난 유해하다는 부모님의 판정으로 흰 우유 이외에는 먹지 못 하게 철저히 금지를 당했을 정도였다. 유치원에서 내 그림이 입선하여 미국 미술 유학의 기회가 생겼음에도 아버지는 어린 내게 그 사살을 숨기신 채 그 길을 원천봉쇄해버리셨다. 평소에도 아버지는 매우 보수적이고 내 입장에선 고리타분한 전근대적 사상을 지닌 분이다 보니, 늘 하셨던 말씀이 ‘그림 그리면 나중에 빌어먹는다.’였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소릴 너무 자주 들었기에 머리에 박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음악을 가르치려 시도하셨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덕택에 미술은 내 인생에서 일찌감치 싹이 잘려버렸다.

musical notes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의 화근은, 어느 날 내가 음표 옮겨 그리기를 거부한 채 평소 쌓여왔던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음악 노트에 과거 그려왔던 내용을 시커먼 고무지우개로 있는 힘껏 문질러 다 지워버린 일이었다. 그로 인해 난 발가벗겨진 채로 심하게 맞은 후 밥그릇 한 개와 함께 식당 밖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아버지는 날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태세였다. 당시 우리와 함께 살았던 막내고모가 아버지와 그 일로 심하게 싸운 후 나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아무튼 난 4살 때의 그 사건 이후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고, 이후 뭔가를 원해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도 움직이거나 활발하게 행동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결국 그 일 하나로 내 전체적인 성격이 전환됐고 그 나쁜 기억으로 인해 움직임과 적극성을 요하는 예체능을 혐오하게 되었으며, 남보다 먼저 나서서 뭘 한다든지 당연한 내 권리를 챙긴다든지 할 생각을 아예 못 하게 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돼버렸다. 결국 그로 인해 이미 일찍부터 난 음악을 싫어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게다가 모든 일에서 자신감과 주관을 잃었기에, 남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뤄야 하는 실기시험을 증오하기에 이른다. 아직도 지니고 있는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롤링 페이퍼엔 공통적으로 친구들이 적어주는 한 문장이 있었다. “너무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은 것 같아. 왠지 아기 같아. 자신감을 가져 봐”. 성적 통지표의 담임교사 의견란에도 매 학년 “다 좋은데 아이가 너무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입니다. 움직이는 것과 운동을 매우 싫어합니다.” 같은 일관된 내용이 적혔다.

illustrated poem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전환기를 맞았다. 조금 친해진 키 큰 친구가 있었는데, 키가 작은 편에 속해 항상 앞 번호였던 나로서는 어떻게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돌아보면 고등학교 때까지도 내겐 키 큰 친구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친구는 음악을 잘했고 좋아했다. 초등학교 부서활동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음악부원이었고 나는 딱히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 어느 부서에 들지 모르던 차에 그냥 그 친구 따라 강남 가기로 했다. 음악부에 든 것은 단지 그 친구가 음악부원이기 때문이었지 여전히 음악 자체를 좋아하진 않았으므로 대충 활동했다. 4학년 때 국어시간에 시조를 노래로 부르게 된 적이 있다. 담임선생님이 몇 명을 일으켜서 그 시조를 노래 부르게 하셨는데, 그때 내 노래에 애들이 평균 5점 만점을 줘서 노래한다는 것에 있어 처음으로 약간의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 후 도덕시간에 도덕 선생님이 ‘건전가요’라는 것을 수업 시간마다 하나씩 가르쳐주셨는데 가끔씩 불러보게 시키셔서 한 번 내가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선생님으로부터 목소리가 맑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때부터 노래 부르기가 좋아졌고 모든 음악 실기시험에서 기존의 ‘양’ 대신 ‘수’를 받게 되었다. 음표 그리기의 어릴 적 악몽을 씻어내고 새로운 음표 그리기의 재미를 형성해 나가게 된 반전 계기였다. 초6때 시화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때 쓴 시로 크게 칭찬받고 상도 받았다. 그때부터 글쓰기에도 약간의 관심이 생겼는데, 중2때 역시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전학만 아니었으면 단짝이 될 뻔했던 친구를 따라 문예부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글을 많이 써보게 돼서 글짓기가 늘었고 글쓰기를 좋아하게 됐다. 내겐 글쓰기도 음악을 좋아하게 된 데에 영향을 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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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3편, 공부, 나의, 유년기, 음악,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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